"돈맥 막혀 생산·소비 차질"…전문가, 경착륙 가능성 경고
최근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와 관련, 지역·소규모 은행 위기가 미국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빠뜨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비록 미 연방정부가 신속히 나서 SVB 예금 전액 지급보증 등 조치로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자금 안정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짐에 따라 중소기업 및 가계에 대한 대출이 위축되면 결국 경기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지역은행들이 미국 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40%"라며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지역별 소규모 은행들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일반 가정과 주로 거래하며 대출금을 공급하고, 이를 통해 경제 전체의 신용 크기를 키우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다.
실제 미 연방준비제도(FRB) 자료를 보면 상위 25개 은행보다 규모가 작은 은행들이 전체 미상환 대출액의 약 3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로 더 크다.
하지만 은행권에 위기가 닥치면 이들 소규모 은행이 대출 기준을 점점 더 까다롭게 적용할 수밖에 없고, 결국 소상공인과 가계 등 경제주체가 자금난에 빠지며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컨설팅회사 EY-파르테논의 그레그 다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SVB로 촉발된 리스크는 현실적"이라며 "특정 기관들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유사 기관들이 대출에 더 신중해지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간 "구제금융은 없다"고 외치던 미 금융당국이 이번 SVB 사태를 맞아 신속히 예금 전액 보호라는 전격적인 조치에 나선 것도 이런 두려움이 확산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투자자들이 은행의 지불능력을 더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결국 다른 은행도 SVB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부상하면서 관련 금융주에 매도 행렬이 이어지는 등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WSJ은 짚었다.
사모펀드인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뢰크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소형 은행들이 자본비율을 높이려 대출 기준을 강화하고 지급을 늦추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동차나 세탁기를 사는 데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지 못하고, 기업 대출도 타격을 받게 된다"며 "중소 은행에 이런 리스크가 더해진다면 경제는 '경착륙'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 슬뢰크 수석은 앞서'소프트랜딩(연착륙)'과 '하드랜딩(경착륙)' 관측이 맞서는 상황에서도 미국 경제가 침체나 소강상태에 빠지지 않고 호황을 유지할 것이라는 '노랜딩(무착륙)' 시나리오를 지지한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SVB 사태 이후 경기 전망이 비관적으로 돌아선 셈이다.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들은 향후 12월 내로 경기 불황에 진입할 가능성을 SVB 붕괴 이전에는 25%로 점쳤으나, 현재 35%로 상향 조정한 상태다.
미국 미시간대 소속 경제학자 다닐 마넨코프는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질 경우 투자 프로젝트 지연을 불러일으켜 고용 감소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경기 후행지표인 고용은 아직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지난 2월 소매판매가 감소하는 등 소비 위축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WSJ은 강조했다.
ING 은행의 미주지역 리서치 책임자인 파드라익 가비는 "대출 기준과 실업률 사이에는 상당히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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