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길 나선 '코딱지들의 대통령' 김영만 아저씨

9가지 색 도화지로 '종이조형' 작품 제작, 60점 전시
"30년 넘게 종이와 씨름…남을 만한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

글로벌리언 승인 2023.05.19 17:42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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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조형' 작품 전시하는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서울=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코딱지들의 대통령'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가 17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 아트오뜨에서 '종이조형'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3.519 khc@yna.co.kr

"코딱지 여러분 안녕하세요?"

'코딱지들의 대통령', '코딱지들의 히어로' 등으로 불리는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73)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원장은 어린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렇게 인사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TV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종이접기를 가르쳐온 김 원장은 '종이조형'라는 새로운 장르의 작품 전시회를 한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종이접기 인생을 살다가 칠순이 넘어서야 첫 개인전을 하며 예술가의 길로 나섰다.

전시회는 25∼29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 아트오뜨에서 한다.

전시회의 명칭은 '종이와 종이의 섞임: 종이거울 K-1001 12.5'이다.

지난 17일 아트오뜨 갤러리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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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아저씨 '종이조형' 이색 작품전 ] [연합뉴스 촬영. 재판매 및 DB 금지

-- '종이접기 아저씨'가 개인전을 하게 된 동기는

▲ 단 하루도 종이를 안 만진 적이 없을 정도로 매일 종이와 살았는데 만들어도 그냥 놀잇감이고 방송용이어서 남는 게 없었다. 30년 넘게 종이와 씨름하면서 좀 남을 만한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지만 그래서 도전했다.

-- 작품 작업은 언제 했나

▲ 5∼6년 전부터 생각했는데 여유가 없었다. 마침 코로나19가 터지고 일이 없어지니까 내 시간이 많아서 너무 좋았다. 이때다 싶어 시작했다. 홍익대학교 응용미술과를 졸업했지만, 그룹전에 3차례 유화 작품으로 참가했을 뿐 개인전을 해보지 못했다.

-- 작품 구상은 어떻게 했나

▲ 2년여간 고민했다. 그러면서 종이를 잘라도 보고, 오려도 보고, 버렸다가 다시 모아서 붙여보기도 하다 보니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손을 타기 시작하니까 아이디어가 계속 머릿속에서 쏟아졌다. 어떤 때는 식사도 안 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 제작에만 꼬박 6개월을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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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의 첫 개인전 '종이조형' 작품 (서울=연합뉴스) '코딱지들의 대통령'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의 '종이조형' 작품. 2023.5.19 [김영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어떤 작품들을 전시하나

▲ 9가지 색의 도화지를 접고, 오리고, 자르고, 붙여서 만든 조형 작품들이다. 돋을무늬가 있는 8절 도화지를 12.5㎝ 크기로 자르고, 그 크기의 도화지로만 모든 조형물을 만들어서 캔버스에 붙여 완성했다. 회화나 조각 등 일반적인 장르가 아니다 보니 '종이조형'이라고 이름 붙였다. 90여 점의 작품 중 60점만 추려 전시한다.

-- 작품에 대한 주변 반응은

▲ 동창과 친한 화가들을 불러 작품을 보여주고 전시해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한 사람이라도 별로라고 하면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세상이 이런 작품도 있구나', '너 천재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즉석에서 작품 두 개를 사겠다고 예약한 친구도 있다.

-- 전시회 장소가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골이다

▲ 서울에 이름난 갤러리에서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나에게는 모두 아까운 작품들이지만 남에게 내세울 만큼의 작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활동은 계속할 생각인가

▲ 이번 전시회를 해보고 정말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면 꾸준히 종이조형 작품을 할 생각이다. 그때는 대형 작품도 제작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는 서울 인사동 같은 곳에서 전시회를 해볼 생각이다.

-- 종이접기는 언제 처음 접했나

▲ 1980년대 초에 사업을 하려다 실패하고 일본 도쿄에 있는 친구 집에 가서 두 달가량 쉬게 됐다. 그 친구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다가 종이접기를 처음 접했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선생님을 따라서 종이학과 사무라이 표창 같은 것을 접었다. 꼬마가 가지고 온 종이학을 다 편 다음에 다시 접어봤더니 너무 어려웠다. 살짝 화가 났다. 미술을 전공했고,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다음날 서점에 가서 종이접기 책 몇 권을 사고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공부했다.

-- 무슨 사업을 했었나

▲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대우실업 광고디자인실에 들어가 6년 정도 그래픽 디자이너로 했다. 과장까지 진급했지만, 광고 전문 기획사를 차리려고 사표를 냈다. 3명의 친구가 투자하기로 했고, 저는 집 팔고 아버님께 돈을 좀 빌려서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부터 임대했다. 그런데 그중에 제일 많이 투자하기로 했던 친구가 주식을 하다 돈을 다 날렸다. 개업도 못 하고 3개월 동안 다른 투자자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당시 돈으로 5∼6억원 정도 날리고 거의 밑바닥까지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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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의 '종이조형' 작품 (서울=연합뉴스) '코딱지들의 대통령'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의 '종이조형' 작품. 2023.5.19 [김영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한국에서 종이접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 일본에서 돌아와 무슨 일을 할까 하다가 종이접기가 떠올랐다. 무턱대고 아무 유치원이나 미술학원에 다니며 종이접기를 하는지 물어봤으나 하는 곳이 없었다. 그때부터 색종이, 도화지, 풀, 가위를 사서 밥 먹을 때 말고는 종이접기만 했다. 종이로 별짓을 다 하는 과정에서 하나둘씩 창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때마다 노트에 그림으로 그려서 기록했다.

-- 종이접기 보급은 쉬웠나

▲ 전화번호부를 펼쳐놓고 서울 지역 유치원과 미술학원 전화번호를 뽑아서 전화했다. '종이접기 하는 사람인데요. 3명 이상 모이면 무료로 강의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어느 날 한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고, 처음으로 교사 6명을 상대로 5∼7살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종이접기 강의를 했다. 이후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한 번은 몇몇 유치원이 연합해 교사 30여명을 모은 곳에서 강의했다. 그날 처음 봉투를 받았다. 집에서 꺼내보니 10만원짜리 수표가 있었다. 아내를 껴안고 같이 울었다.

--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는데

▲ 한 선배가 서울 유석초등학교 미술 교사 자리를 소개해줬다. 저학년생에게는 종이접기를, 고학년생에게는 평면보다는 입체 위주로 가르쳤다. 집에서 라면상자, 스티로폼 같은 거 갖고 오게 하고 물감으로 칠하고 로봇이나 자동차, 공룡 같은 것을 만들게 했다. 교실을 우주 공간으로, 해저 기지로 꾸며 보기도 했다. 매년 교내에서 학생 작품 전시회도 했다.

-- 방송 출연도 오래 했다

▲ 종이접기 강의와 미술 교사 생활이 소문이 많이 났는지 당시 KBS 아침마당에서 처음 연락이 와 인터뷰했다. KBS 1TV 유치원 '하나 둘 셋' PD가 그 인터뷰를 보고 연락해왔다. 88년 올림픽 끝나고 정규 방송 개편하면서 처음 그 프로에 출연했다. 처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송하는 5편을 금요일에 녹화하는데 죽는 줄 알았다. 손을 덜덜 떨리고, 말을 제대로 안 나오고, 땀은 줄줄 흘렀다. 수없이 NG가 났다. PD가 퇴근도 못 하고 일요일까지 편집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KBS에서만 9년 했고, 중간에 EBS 딩동댕 유치원에도 좀 출연했다. KBS 2TV '혼자서도 잘해요'는 첫 방송부터 종영까지 했다. 대교방송 '김영만의 미술 나라'도 10년 가까이 했다.

-- 방송 에피소드가 있다면

▲ 2015년 MBC TV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생방송에 출연했는데 20∼30대가 된 코딱지들이 올리는 글을 보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6주 동안 인기 1위로 승승장구할 때다. "코딱지들 안녕하세요"라고 시작해서 10분 만에 실시간 검색 1위에 올랐다. 어렸을 때 유치원 TV 보며 자랐던 당시 20∼30대가 그 프로의 주요 시청자여서 그랬던 것 같다.

-- 우울증을 앓았다고 들었다

▲ 방송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했다. 똑같은 것은 안 한다는 철칙이 있었다. 근데 5년 정도 하니까 내일 5개 아이템을 가지고 가서 녹화해야 하는데 4개만 생각나고 하나가 안 떠올랐다. 그런 경우가 잦다 보니 우울증이 왔다. 다행히 친구 권유로 혼자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고쳤다. 그다음부터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게 됐다. 대본만 보면 아이템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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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의 갤러리 아트오뜨 (서울=연합뉴스)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 있는 '코딱지들의 대통령'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의 갤러리 전경. 2023.5.19 [김영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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