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 씨는 20대 중반의 여성이다.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의대생이고, 아름다운 외모와 스타일까지 갖췄다. 인스타그램의 스타이기도 하다. 그가 사진을 올리면 '좋아요'가 잇달아 달린다.
학업으로 바빴지만, 그는 고교 때부터 SNS 활동을 했다. 힘겨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예쁘고 똑똑하다는 이유로 여학생들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며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지만, 역효과만 났다. 따돌림은 강화됐다.
이 때문에 그는 현실보다는 온라인 세계에 매달렸다. "나는 너희 같이 공부만 하는 애들이 왕따시킬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 친했던 소위 '잘나가는' 애들이나 'SNS 얼짱'들에게도 연락했다.
그는 이제 고교 때 그를 괴롭혔던 이들을 더는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SNS에 빠져 산다.
"인스타그램이 뭔가 제 하나의 스펙 같아요. 인스타그램이나 인기 척도 자체가요."
30대 여성학 연구자 김지효 씨가 쓴 신간 '인생샷 뒤의 여자들'(오월의봄)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은 저자의 석사논문을 근간으로 살을 입혔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인스타그램 '인생샷' 문화에 참여하거나 참여했던 20대 여성 12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썼다.
'인생샷'이란 사진 찍기 준비 단계부터 촬영 후 보정을 거쳐 SNS에 올린 후 그에 대한 반응을 관리하는 일까지, 그 모든 과정을 통칭하는 말이다. 인생샷에는 사회현상이나 인정욕구만으로는 일반화할 수 없는 복잡한 맥락이 자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한 '인생샷'은 여러 유사한 열풍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1990년대 후반 '아이러브스쿨'로 시작해서 '싸이월드' '5대 얼짱 카페' '페이스북'을 거쳐 도달했다. 촬영기기도 90년대 후반 컴퓨터에 연결해서 썼던 화상채팅용 웹캠에서 출발해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각 매체를 대표했던 영향력 있는 스타들의 명칭도 퀸카→얼짱→여신→인플루언서로 바뀌었다.
셀카의 화각(카메라 촬영 범위)은 1990년대 얼굴, 2000년대 얼굴과 몸, 근래에는 여기에 배경까지 추가됐다. 이 때문에 얼굴부터 배경까지를 아우르는 '인생샷'은 혼자 찍기 어렵다. 제작 과정이 콘셉트 기획, 장소 및 의상 선정, 촬영, 보정, 업로드 등으로 세분되어 있어 중간중간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건 '좋아요' '댓글'을 제공해줄 조력자다. 인생샷을 만들어주는 건 배경의 아름다움이나 피사체의 멋진 의상보다도 "아름다움을 승인하는 권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디서 찍을지, 어떤 보정 과정을 거칠지 등에 대한 고민 끝에 탄생하는 '인생샷'은 '좋아요'나 '댓글'이 달린 후에야 비로소 '진짜 인생샷'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인생샷이 주는 가벼움도 20대 여성들이 인스타그램으로 몰리는 원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페이스북은 점차 정치적인 내용의 글을 쓰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 갔고, 글자 수 제한이 있는 트위터도 정치·사회적 발언의 장으로 변해갔다.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너무 진지해졌고, "무서운" SNS의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 인스타그램은 비교적 밝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다. 논쟁에 잠식되지 않은 채 외모 관리와 이성애에 관심 있는 페미니스트들까지도 인스타그램으로 몰리는 이유다.
저자는 20대 여성 다수가 인스타그램 '인생샷'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83%는 인스타그램을 사용한다. 이들은 친구를 팔로잉하는 비율이 90.6%로,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고, 인스타 친구와 실제 아는 경우도 72.5%로 역시 가장 높다고 한다. 사실 20대 여성을 하나의 집단으로 규정하긴 어렵다. '알파걸'로 불릴 때는 자신감 넘치는 존재로, 'N포세대'로 칭해질 때는 안쓰럽고 취약한 존재로, '이대녀'(20대 여성)로 불릴 때는 과격한 전사로 각각 묘사된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인생샷'을 찍을 때만큼은 적어도 한두 가지 이미지로 대동 단결된다. 그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이 주인공인 화보를 연출하는 감독이자 셀카를 성형하는 '디지털 집도의'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찍는 인생샷 안에는 자본주의 고도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남성 욕망의 체화,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과시욕 등 다층적인 욕망이 뒤섞여 있다. 저자는 책을 쓰며 "어떤 취약함은 화려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과격해 보이는 얼굴 안에도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취약한 얼굴 안에도 욕망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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