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9월 서울 마포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는 '조용한 기부'를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나라 밖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데 써달라며 기부자가 낸 금액은 1억원.
기부 의사를 확인하고, 확약을 맺은 뒤에도 기부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존재가 드러난 건 1년 뒤 다시 한번 재단에 1억원을 쾌척하면서다. 기부자의 본명은 김남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었다.
그에 따라 RM이 미국에 있는 조선시대 활옷을 보존 처리하는 데 힘을 보탠 점도 뒤늦게 알려졌다.
13일 국립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RM이 보존·복원 작업을 지원한 활옷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이 소장한 유물이다.
활옷은 조선시대 공주나 옹주 등 왕실 여성이 입던 혼례복을 뜻한다.
진한 붉은 비단 위에 다양한 기법으로 무늬를 수놓아 장식한 옷으로, 왕실뿐 아니라 민간으로도 널리 퍼져 혼례 때 신부가 입는 예복으로 여겨왔다.
LACMA가 소장하고 있는 활옷은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39년 미술품 수집가 벨라 매버리 씨가 기증한 것으로 파악되나, 정확히 누가 입은 옷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활옷과 마찬가지로 이 활옷 역시 붉은 빛에 화려한 자수가 두드러진다.
양쪽 소매를 다 펼쳤을 때 길이가 약 172㎝, 세로 길이는 127㎝ 이르며 연꽃, 모란, 봉황, 백로, 나비 등 혼례를 올리는 부부의 해로와 행복을 비는 무늬를 수놓았다.
한 쌍의 봉황은 음양의 조화와 부부의 화합을, 나비와 꽃은 남녀의 사랑을 상징한다. 뿌리마다 잎과 꽃이 풍성하게 자라는 연꽃은 자손의 번창을 뜻하는 문양이다.
특히 활옷 앞면에는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를 담은 동자와 함께 '바다와 강처럼 오래 살고 복을 누리기를', '남녀의 결합은 곧 만복의 근원이다'는 뜻의 글귀가 한자로 수놓아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50여 점의 활옷이 남아있는 가운데, 이 활옷은 옷감에 수놓은 문양이 우수하고 형태나 색감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해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재단은 지난해 10월에 이 활옷을 국내로 들여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보존 처리 작업을 진행해왔다.
사전 조사를 거쳐 활옷의 바탕이 되는 섬유, 실 등 재료와 제작 기법을 확인했고 적외선 촬영 조사, 오염물 제거, 손상 직물 보강 등 약 5개월간 여러 공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오랜 세월 빛바래거나 가려졌던 자수도 다시 찾아낼 수 있었다.
박물관 관계자는 "보존 처리 결과, 활옷 본연의 바탕색인 진한 붉은빛인 대홍(大紅)색과 궁중 자수 기법을 되살린 온전한 조선 왕실 여성 혼례복 활옷이 재탄생됐다"고 평가했다.
활옷은 내년에 미국 현지에서도 전시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RM은 이번 전시에 앞서 6월 재단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기부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보존 처리 후 다른 활옷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활옷 연구에 도움이 되고,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아름답고 우수한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RM은 문화유산 보존·복원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문화재청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바 있다.
문화재청은 최응천 청장 명의의 감사패를 통해 "우리나라 문화유산과 역사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애정으로 나라 밖 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존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RM이 지난해 추가로 기부한 1억원은 전 세계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 있는 한국 회화와 관련한 정보를 담은 '한국 회화작품 명품' 도록을 만드는 데 쓰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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