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이자 스스로 천재라 칭송한 자의식 과잉의 예술가, 기행을 일삼던 괴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성(城)을 사준 로맨티스트.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남자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 그의 작품 세계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삶을 살았다.
외모도 범상치 않다. 한 가닥으로 뭉쳐 말아 올린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하지만 그가 20세기 문화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아이콘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한다. 달리가 죽은 지 30년이 훌쩍 남은 지금까지도 그를 조명하는 각종 콘텐츠가 쏟아져나오는 이유다.
메리 해론 감독의 영화 '달리랜드'는 평범한 한 남자의 시선으로 인간 살바도르 달리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화가로 전성기를 찍은 이후 황혼을 맞은 달리와 그의 아내이자 뮤즈인 갈라를 관찰한다.
영화는 갤러리에서 일하는 달리의 광팬 제임스(크리스토퍼 브리니 분)의 관점으로 전개된다. 달리(벤 킹슬리)의 조수가 된 그는 뉴욕의 호화스러운 호텔에 머물며 일을 돕는다.
"웰컴 투 달리랜드"라는 환영 인사와 함께 들어선 달리의 세계는 이상한 것투성이다. 달리는 하룻밤 파티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돈을 쓰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곁에 두며 영감을 얻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한밤중 소름 끼치는 관음증 증세도 보인다.
무엇보다 특이한 건 달리와 갈라(바르바라 수코바)의 관계다. 갈라는 남편 조수인 제임스에게도 대놓고 추파를 던질 정도로 성에 개방적이다. 달리는 이를 알면서도 묵인한다. 심지어 아내가 새 애인에게 돈을 대느라 통장 잔고를 바닥내도 이해해준다.
영화에는 빛나는 시절이 아닌 쇠약하고 보잘것없는 달리의 모습이 주로 나온다. 회심의 전시에서 부부싸움을 하느라 망신당하고 비평가들에게서 좋은 반응도 끌어내지 못한다. 달리 주변 사람들은 그를 막무가내로 추앙하지만, 그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달리는 극 후반부엔 수전증으로 붓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다. 심각한 건강염려증 탓에 작은 상처에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며 발작한다. "천재들은 죽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서서히 죽음을 향해가는 모습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달리랜드'는 그간 사진이나 글로만 접한 달리의 삶을 생생하게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한올 한올 소중하게 수염을 손질하고 천재성을 번뜩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장면 등이 특히 흥미롭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기 영화가 다루는 주인공의 고뇌나 비밀 같은 깊은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달리는 왜 그랬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어쩌면 달리라는 인물 자체가 불가해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그의 삶을 비추는 게 영화의 최대치일지도 모른다.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킹슬리는 이번에도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다. 미친 노인과 천재 화가, 아내밖에 모르는 낭만적인 남자 사이를 오가며 몰입감을 높인다. 청년 달리 역을 소화한 에즈라 밀러 역시 이름값을 한다. 갈라와의 첫 만남,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에 얽힌 일화 등 극의 중요한 장면을 혼자 힘으로도 자연스레 이끈다.
10월 18일 개봉. 97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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