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친숙해야 하나요?…놀라게 하고, 변화주고, 붕괴시키죠"

김성희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2000년대 들어 '재현' 벗어나며 새로운 움직임"
"피카소 작품도 동시대에는 낯설어…미래세대가 적극적으로 주도해 나가야"

글로벌리언 승인 2023.10.19 09:21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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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 [옵/신 페스티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낯설다', '어렵다'…20년간 똑같은 소리를 들었어요. 이제는 친절하게 답하는 대신 역으로 물어요. '예술이 친숙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게 제 질문이에요."

기존 장르를 탈피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동시대 예술에 주목해 작품 활동을 한 김성희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18일 기자들과 만나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감독은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시각과 시도로 화제가 되는 동시대 작가들을 소개해왔다. 이 분야에서는 컨템퍼러리 무용의 선구자인 미국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 포스트 드라마 연극을 보여주는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 이탈리아 천재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지 등을 대표자로 꼽을 수 있다.

국내 유일무이한 동시대 공연예술 작품들을 소개하는 축제의 명맥도 이어왔다. 2007년 기획한 다원 예술 축제 '페스티벌 봄'을 2013년까지 이끌었고, 2020년부터는 옵/신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다. '옵/신'에는 '장(Scene)을 벗어난다(Ob)'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김 감독은 "공연예술사를 보면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며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지난 20년간 그 흐름이 이어져 오고 있다"며 "운 좋게 그 시기에 이런(동시대 예술을 소개하는)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시대 예술의 눈에 띄는 특징은 연극, 무용, 영상, 미술 등 특정 장르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미술과 공연 분야에서 모두 전통적인 전시, 공연 방식인 '재현'을 기피하게 되면서 이런 탈 장르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미술은 '모더니즘'을 거치면서 재현을 공공의 적이자 끔찍한 것이라고 몰아냈다. 이런 현상이 공연예술계에는 2000년대에 불었다"며 "있을 법한 상황을 모사하고, 환영을 만들어내는 재현에 의문을 던졌다. 일례로 서사를 가진 연극이 아닌 다큐 연극, 렉처 퍼포먼스가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술과 공연이 모두 재현을 극복하면서(벗어나면서) 동침하게 됐다. 공연계 사람이 난데없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런 다양한 환경 속에서 미학에 대한 기준도 새로 제시되고, 동시대 예술에 대한 의식이 깨어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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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신 페스티벌 참여작 '열병의 방' [옵/신 페스티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장르의 기존 틀이 무의미해지고 익숙하던 서사가 사라지면서 동시대 예술은 낯설고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예술은 낯설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동시대 예술의 핵심"이라고 답했다.

그는 "예술은 엔터테이닝(entertaining)과 다르다. 친숙하고, 즐겁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게 충격을 주고, 내 편견을 깨고, 나를 붕괴시킨다. 그러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며 "대신에 극장이든 미술관이든 문을 열고 나갈 때 무언가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현대예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시대 예술가들은 소위 말하는 '메인 스트림'(주류)의 반대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시계추는 지금(now)보다 한 시간 앞서가 있다"며 "피카소의 작품도 동시대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고 친숙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피카소가 제시한 방향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동시대 예술의 창조성과 희소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누군가는 메인 스트림을 지켜야겠죠. 재밌고, 즐겁고, 스트레스를 날려줄 공연을 해야 해요. 그렇다고 모든 예술가가 그것만 추구한다면 참 슬플 거예요. 적어도 누군가는 미래의 한 시간을 개척해나가야죠. 그걸 구축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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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신 페스티벌 참여작 '정원에서 숲을 호흡하듯이' [Olga Fedorov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젊은 세대가 개척에 적극적이어야 하며, 이를 지원해주는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것이 김 감독의 지론이다.

이를 위해 그는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 자리에서도 단계적으로 물러나 다음 세대가 축제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이달 31일 개막하는 옵/신 페스티벌을 회고전 형식으로 여는 것도 이런 변화를 준비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컨템퍼러리라는 신(scene)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다원 예술'이라고 불리며 민간, 개인이 중심이 돼 이렇게, 저렇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며 "전체 예술을 100이라면 한다면, 그중에 10 정도는 미래(동시대 예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20년간 사회·정치적 환경은 물론 문화예술 환경도 바뀌었다. 페스티벌의 포맷도 완전히 새로 고안해야 할 시기"라며 "페스티벌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변화는 다음 세대가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적극적인 자세를 현대 예술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과거에는 유럽에서 누군가 새로운 걸 만들면 '이게 유행이래'라면서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졌어요. 더 나아가 미래를 만드는데 능동적으로 참여해야죠. 따라가고, 소비하는 방향성을 바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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